[기획자 註]
국제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주요 강대국이 해상에서 경쟁해왔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중국이 20세기 말부터 해양지배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하게된 배경을 살펴보고, 특히 시진핑 주석 체제하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해양지배력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는지 분석하여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초록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해상무역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세계적으로 해양지배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군사 억제 중심에서 글로벌 공급망 등 상업 분야에서 동맹국과 조선 산업 재편(MASGA) 및 공급망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는 계속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미·중 경쟁은 군사 분야를 넘어 상업 분야에서의 해양질서 재편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기존 해양질서와 신질서 간 구조적 대립은 해상공급망 및 글로벌 물류체계 경쟁 심화는 경제 블록화와 이에 따른 국제정치적 긴장의 고조를 예고한다.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중국의 항만 투자 확장에 따른 국제정치적 지형 변화 속에서 한국에게 주어진 전략적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첫째, 동맹국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넘어 조선·해운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경제 동반자 중국과의 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균형 외교를 지속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 블록화에 대비하여 미·중 중심 해상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인도양·아프리카 등 제3권역과의 물류·조선 협력을 심화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1. 서론: 미국의 해양지배력 쇠퇴 속 중국의 부상
2000년대 접어들어 급증한 테러리즘과 미국발 경제위기 등으로 미국의 전세계적 영향력이 쇠퇴하는 가운데 세계는 중국의 부상에 주목했다. 중국은 세계에 경제를 개방한지 30여 년만인 2010년에 세계 2위 경제로 올라섰고 2017년에는 GDP(구매력 평가, PPP)를 기준으로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자리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점차 정치·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해양을 통해 전세계로 영향력의 범위를 넓여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 수립 이후 20세기말까지는 연안 방어를 위해 중국 지도부는 해군력 증강과 군 현대화를 통해 군사적 영향력을 높이는데 집중했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해상무역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세계적으로 해양지배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 역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해양지배력 복원을 새로운 전략 목표로 상정하며, MASGA 와 같은 조선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일본 등과 함께 전례없는 수준으로 대중국 견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로써 미·중 간 경쟁은 해운·조선 분야에서의 전면적 대결로 격화되고 있다.
오늘날 미·중 경쟁 심화는 중국의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가 기존 해양질서와 신질서 간구조적 대립임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을 동맹과 동반자 구조적 긴장 속에서 전략적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하며, 유사한 입장에 놓인 국가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전후 군사력 기반의 해양지배력을 형성한 미국과 달리, 상업적 수단을 중심으로 해양지배력을 넓혀가는 중국의 행보에 주목하여 그 동인을 고찰gk고, 이에 따른 국제정치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2. 서구 열강의 해상 침략과 백년국치(百年国耻)의 역사
중국은 전통적인 대륙 국가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막강한 해양지배력을 행사한 역사를 지닌다. 특히 15세기 명나라 영락제 시기에는 정화의 대규모 원정을 통해 인도양까지 영향력을 투사하며 이른바 명의 평화(Pax Ming)를 실현하고자 조공 체제를 해외 영토로까지 확장했다. 당시 중국은 유럽보다 앞선 항해술과 거대 보선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해양지배력을 행사했으나, 북방 육상 세력의 위협 등 대륙 내부의 안보 위기에 직면하며 자발적으로 해양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해양지배력의 성쇠는 이후 청대부터 중국 수립까지 백년국치로 이어지는 굴욕의 역사와 맞물려, 현대 중국이 해양 강국을 열망하게 된 결정적인 역사적 동인이 되었다.
15세기 명나라는 당시 무역의 중심이었던 인도양에서 여러 해적과 마자파힛 왕조(Majapahit Empire)와 같은 수 많은 해상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또 필요시 그들을 제압했다. 당시 해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단 정해진 항로를 따라 항해하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일을 넘어서 정치·경제·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거나 무력을 쓰는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행위였다. 명나라는 100여 척 선단을 이끌고 대규모 원정에 나서기도 했고, 스리랑카와 같은 주변 해상세력에 실질적으로 무력을 행사하며 해양지배력을 현시했다.1)
하지만 명대부터 청나라까지 이어진 해금정책으로 중국의 해양지배력은 쇠퇴했고, 그 틈새로 서양 열강의 침략이 이어졌다. 해금정책은 바다를 통한 외국 교류를 금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이래, 명나라가 북방의 육상세력 위협에 대한 방어에만 주로 집중함에 따라 해양활동은 자연스럽게 동력을 잃었다. 청나라는 1840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항구 다섯 곳을 강제로 개항했고, 그 후 약 100년간 서양 열강의 해상 침략을 겪었다.2) 그 후 청나라는 유럽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약 한 세기간 쇠락하는 백년국치의 역사를 겪었다.
3. 새로운 국가발전 비전으로서 해양강국 건설의 공식화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해양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표출해 왔으나, 실질적인 해양자원 개발과 경제 발전을 위한 본격적인 투자는 경제적·기술적 역량을 확보한 2010년대에나 이뤄졌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연해(沿海) 지역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자 근해 자원개발과 원해 공해 개척을 병행했고, 이를 해양경제전략의 기본방침으로 설정하여 해양경제 기반의 국민경제발전을 추진했다.3) 이러한 기조는 80년대 장쩌민(江泽民) 시기에 접어들어 해양개발과 해양산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계기로 이어졌고, 후진타오(胡锦涛) 시기까지 계속되어 해양경제 기반의 국가발전 전략으로 발전했다.
후진타오 시기 중국은 범국가적 해양교육을 통해 국가비전으로서 해양강국 건설을 선포하였다. 그 시작은 2003년 11월에 열린 제16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집단학습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15세기 이후 강대국 발전사를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중국중앙방송(CCTV)은 약 3년에 걸쳐 강대국의 현대화 모델을 정리하여 《대국굴기(大国崛起)》라는 1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 전국민이 볼 수 있도록 방영하였다. 이어 중국은 기업 주도 해양 개척을 통해 국가를 부강으로 이끈 동인도회사 등 서구의 성공 사례를 분석한 《기업의 힘(公司的力量)》과 국가 주도 해양 탐사로 국가 재원 확보사례를 담은 《해양을 향하여(走向海洋)》 등을 추가로 제작하여 방영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국가 권력의 연장선이자 자본과 결합한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했다. 또한, 중국은 해양을 강대국 간 군사 경쟁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인류의 생활터전이자 자원의 보고로 인식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여론 기반을 조성하였다.4)그리고 중국 지도부는 2012년 11월에 열린 제18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해양강국 건설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중국 수립 이래 최초로 국가전략 차원에서 해양발전계획을 공식화하였다.5) 중국은 이를 세계적인 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정책적 실현이라 자평하며, 군사 중심의 미국 모델과 차별화 된 국가-기업 간 협력을 통한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를 예고하였다.6)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이준성 (제주평화연구원 제주포럼 기획팀장)
중국 칭화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를 받고, 제주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플라자프로젝트 해양안보센터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군통역장교, 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제주대 법과정책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 해양분쟁, 미·중 해양패권 경쟁, 섬 연구(island studies) 등이며, 최근 연구실적으로는 “해양패권 이행 경로의 유형화 연구” 『국제지역연구』(2026), “중국의 상업적 도전과 미・중 해양패권 경쟁 구조의 전환: 서태평양 항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중소연구』(202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