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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글로벌 경제질서의 미래
등록일
2026-06-12
조회수
24

[기획자 註]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취임 이후 더욱 가속화되는 형국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치·외교·경제 환경 속에서 각국은 국익과 안보를 위해 대외전략을 기민하게 수립해야하며, 이러한 부담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 가중되고 있다. 이에 본고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중심으로 오늘날 국제 환경을 분석하여 한국 외교가 나아갈 길에 대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초록

오늘의 국제질서는 미·중 갈등을 넘어 미국·중국·러시아의 3대 강대국이 경쟁과 견제, 사안별 협력을 병행하는 불안정한 다극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20세기 규칙기반 자유주의 질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화되었고, 대중국 억제전략 역시 트럼프 2기 들어 근본적 전환을 맞이했다. 세계는 초강대국들이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가운데, 서방 진영과 글로벌 남방의 이합집산이 중첩되는 복합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세 국가는 모두 기존 질서의 재구성을 추구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러시아는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을 지속하고, 중국은 공급망, 기술, 그리고 일반 경제 영역에까지 영향력 확대를 가속하고 있으며,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삼아 글로벌 경제질서의 구조적 재편을 시도하는 마가(MAGA)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갈등과 경쟁 속에서도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불편한 공존’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신냉전으로 단순 규정하는 것은 변화의 본질을 오도한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2기 들어 지금까지 해 온 글로벌 공공재 제공자 역할을 축소하고 단극체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기본관세와 무역 수지 및 친소관계에 따른 추가 고율 관세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 결과 주요 다자체제와 국제기구는 전후 자유주의 규범의 관리자가 아니라 다극적 경쟁이 충돌하는 무대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동맹 및 파트너십 다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대미 의존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면서도, 유럽, 일본, 호주, 동남아, 인도 등 주요 글로벌 남방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공급망, 기술 및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국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중·러 삼중구조 속에서 정책 선택의 폭을 유지할 수 있는 다층적 생존전략이 필수적이다.


Ⅰ. 서론: 경주 APEC이 보여준 세계질서의 전환점

 

2025년 11월 경주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와 다수의 정상 간 양자 회담은 글로벌 경제질서가 중대한 교차로에 서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장면은 미국과 중국 정상이 최근의 급박한 대치와 긴장을 뒤로하고 통상문제에서 전격적으로 휴전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노골화한 미국의 ‘중국 때리기’ 이래로 누적되어 온 기술, 산업, 안보 차원의 전방위적인 갈등을 고려해 본다면, 이번 합의는 분명 전략적 차원의 ‘휴지기’로 평가할 만하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과 중국의 강대강 대응이 서로에게 심각한 비용을 누적시키던 상황에서 양국이 충돌의 고삐를 다소 늦추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곧바로 ‘안정’이나 ‘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중 이 장기 경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제질서는 새로운 불확실성에 진입했다고 보아야 한다. 유럽에서의 전쟁을 통하여 오히려 존재감과 레버리지를 높인 러시아와 함께, 미국과 중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권을 구축하며 권역별 제도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사이에 위치한 중견국에게는 더욱 까다로운 대외경제 및 안보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미·중 간의 직접 충돌이 줄어드는 것이 주변국에게 곧바로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견국은 ‘누구의 영향권 안에 설 것인가’에 관한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당면한 선택지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압박을 더 강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된다. 이는 단순한 보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미국의 대외전략, 나아가 세계질서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먼저 최근 글로벌 경제질서 변화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어서 최근의 한미 통상합의의 의미를 논의할 것이다. 이어서, 트럼프 관세정책의 구조와 배경 철학, 그리고 이런 정책이 글로벌 경제질서에 초래하는 변화와 중견국에게 주는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Ⅱ. 세계질서의 구조 변화: 트럼프 관세정책이 가져온 지각 변동1) 

 

지금의 국제질서는 미·중 갈등의 대결 구도를 넘어, 미국, 중국, 러시아 세 세력의 전략적 경쟁 및 협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이 새로운 체제에서 여타 국가들이 공존을 꾀하는 불안정한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지배적 질서였던 규칙기반 자유주의 질서(rule-based liberal world order)는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부터 트럼프 2기 집권에 이르는 16년 동안 서서히 수명을 다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작하여 트럼프 1기 및 바이든 행정부까지 이어져 왔던대중국 억제정책도 트럼프 기에 와서는 완전히 새로운 2 국면을 맞이했다. 오늘의 세계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세 초강대국이 새로운 균형을 형성하는 가운데 여타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 글로벌 남방(Global South)의 이합집산이 혼재하는 양상으로 재편되고 있다.

세 국가는 모두 20세기 규칙 기반 질서의 재편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러시아는 무력을 통한 영토확장을 완성해가면서 2차대전 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영토 변화를 초래하고 있고, 중국은 대만에 대한 적극적 투사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공급망과 기술 및 일반 경제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삼는 경제 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면서 글로벌 경제질서를 새롭게 재구조화하는 마가(MAGA)혁명을 진행 중이다. 세 나라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불안한 공존”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작금의 세계를 신냉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을 오판하게 만든다.


이 중 미국의 변화가 가장 주목된다. 1990년 이후의 단극체제가 힘을 다해가면서 그동안 푸틴의 러시아는 다극체제에서의 공존과 평화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으며, 중국은 시진핑 집권 후 사실상 G2로 세계질서를 재구조화하려고 해 왔다. 반면,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의도를 암묵적으로 부정하는 듯, 무시하는 듯 대응해 왔으나, 트럼프 2기 정부 들어와서는 자기 스스로 단극체제를 벗어던지고 다극체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현재의 세계질서는 불안정한 다극질서, 혹은 불편한 공존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글로벌 공공재의 창출과 유지라는 전통적인 미국의 역할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자국의 단기적 이익에 충실한 대외정책을 구사한다. 여기에 관세가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공세적 관세정책은 소위 ‘공정’한 무역정책을 넘어서 글로벌 경제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모든 교역 상대국에 기본입장료 10~15%를 부과하고, 무역흑자 규모나 친소관계, 트럼프의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추가적인 고율 관세를 매기는 이 새로운 시도는 미국이 이제 더 이상 자유무역의 수호자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오늘날의 세계질서는 패권 경쟁을 넘어 패권 다극화의 양상으로 진입했다. UN, WTO, G7, G20, APEC 등 미국이 참여하고 있는 주요 거버넌스 체제들도 이제 더 이상 자유주의 다자질서의 관리기구가 아니라, 미국 주도의 상이한 다극질서가 다투는 신질서 경쟁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 맥킨리주의(McKinleyism) 및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큰몽둥이정책(Big Stick Policy)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지배권 확보, 제국주의적 대외팽창주의, 고율 관세정책, 제국주의 영향권의 암묵적 인정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안보를 책임지지 않으며, 해외 분쟁에는 가급적 관심을 두지 않지만,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경우에는 빠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남북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수호하고 트럼프 행정부 , 입장에서 복잡하고 골치 아픈 모든 종류의 다자주의를 배격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 속에서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하여 최대한 우방국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은 대만과 동아시아에서 유동성의 증가,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분쟁, 홍해 등 전략지점의 안보 불안정 등 안보 불안의 세계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여 우방국에 대해서 더 가혹한 통상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상대국의 추가적인 시장개방 효과를 부분적으로 가져오겠지만, 기존 현상 변경 세력에 대한 도덕적 우위의 상실과 미국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소멸을 초래한다. 글로벌 남방 국가들의 단합과, 유럽, 일본, 한국, 오세아니아 등 유사입장국(like-minded states)들의 전략적 협력을 촉진하고, 부분적으로 시장의 탈미화가 진행되고 있다.

내란을 극복하고 정권 인수기를 생략한 채 집권한 이재명 정부는 성장률의 하락, 정부 기능의 저하, 반지성, 부패 및 무능의 시대를 극복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면서, 이와 동시에 대외적으로 약화하는 규범적 질서와 마가혁명이 불러오는 척박한 대외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익 수호를 위하여 분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서 시작했다.
 

Ⅲ. 한미 통상합의의 구조: 압박과 타협의 경계선

 

1. 관세 인하와 대미투자협정의 의미

 

2025년 10월 29일 발표된 한미 통상합의는 상호 관세의 인하와 대미투자 협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양측은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25% 수준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하였으며, 자동차 및 부품과 같은 핵심 품목도 같은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품목별 관세 중 반도체와 의약품은 대만, 유럽 등 다른 주요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최혜국 대우가 적용되었다. 항공기 부품이나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과 같은 특정 품목은 무관세로 예외 처리되었다.


투자 부분에서는 미국 측이 초기 요구했던 3,500억 달러의 전면 현금 이동 방식이 조정되어, 현금성 투자 2,000억 달러와 MASGA 방식의 한미조선협력 1,500억 달러의 이원적 구조로 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간 투자 상한 설정, 외환시장 불안 시 협의 조항, 프로젝트 진척도에 따른 순차적 투자(captial-call),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 SPC) 공동 운영, 한국인 PM 선임 가능성 등 소위 안전장치가 도입되면서 한국이 대체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부담으로 완화되었다.
 

2. 왜 통상합의에 시간이 걸렸나
 

한국이 미국과의 통상합의의 큰 틀을 마련한 것은 7월 30일이다. 일본이 9월 초에 구체적인 합의 형태를 도출한 것과는 달리 한국과 미국은 8월 정상회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3개월을 더 끌다가 마침내 10월 29일 APEC 기간 중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후 양국간 합의의 구체적 기록형태인 팩트시트(Fact Sheet)를 내 놓은 것도 합의발표 후 2주가 더 지난 11월 14일이었다.


이렇게 양국 간 합의가 늦어진 것은 한국이 당초에 미국이 제시한 제안에 대하여 수긍하지않고 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당초 미국의 요구에 강하게 반발한 가장 주된 이유는 제시된 ‘투자’ 규모가 한국 경제의 규모에 비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 GDP의 5~7%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를 매년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한국 외환 보유액의 80%에 달하는 수준으로,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 요구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최초의 미국 제안은 마치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이 패전국 독일에 부과했던 배상금과 유사한 구조와 규모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2)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단순한 경제협상이라기보다, 자국 경제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수준의 압박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합의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설계된 결과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경제적 대가와 교환하는 구조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 대가의 규모가 통제 가능한 범위로 축소되었고, 합의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이 제거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결과다.
 

3. 의미: 거대한 압력 속에서 얻어낸 제한적 안정
 

이번 타결은 한국이 경제 안보 환경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계획한 투자 일정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도 동맹국과의 갈등 확산을 자제할 명분을 확보했다. 향후 미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 실행이 담보되어야 하지만, 양국 간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합의는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동맹 구조. 즉 투자를 통한 전략적 결속에 한국이 더 깊이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과 EU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 관세와 투자 요구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우방국의 경제와 산업 구조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만약 약속이 충실하게 이행된다면 불가피하게 장기적으로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에 도전을 제기할 여지도 남겼다.
 

Ⅳ. 트럼프 관세정책 구조: 관세를 중심으로 재설계된 대외전략

1. 관세의 전략적 무기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관세정책은 단순히 보호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관세를 외교, 안보, 통상, 재정 운영의 중심 도구로 사용하는 전면적 전략이다.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최소 10~15%의 기본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은 관세를 사실상 미국 경제권에 연결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트럼프 정책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미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국가는 예외없이 불공정국가이며, 이는 해당 국가가 미국을 이용해 부를 속여서 뺏어갔다(rip off)는 의미라고 본다.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운 무역의 발생 원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 흑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은 다양하지만, 어느 방식이든 미국에 대한 경제적 환원을 실질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흑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관세를 그냥 내던가,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획기적으로 늘리던가, 국방비를 늘려 늘린 국방예산을 모두 미국산 무기를 사는데 사용하던가, 주요 대미수출기업을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이라는 요구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모두 효과가 없을 시에는 미국 재무성에 현금을 전달하라는 놀라운 요구사항도 담고 있다.3) 셋째, 보

복관세나 동맹국 간의 공조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모두 개별적으로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이 세 번째 원칙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현재로서는 중국밖에 없다. 이러한 접근은 글로벌 경제가 지난 70여 년간 유지해 온 규범 기반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다자주의나 WTO 규범은 사실상 무시되며, 위계적 시장 질서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2. 기본관세, 품목별 관세, 상호 관세의 삼중구조


트럼프 관세 체제는 세 단계의 관세가 중첩되는 구조를 갖는다. 첫째,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10% 또는 15% 기본관세는 미국 시장 접근 자체의 비용이다. 영국이나 호주같이 가족의 일원인 나라에는 10%, 그 외 우방국 친구에게는 15%가 기본이다. 둘째,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전략 품목에는 25% 또는 그 이상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다. 품목 관세의 대상은 미국 내로 생산을 불러들여야 하는 전략 산업인데, 전략 품목의 대상과 수는 정해져있지 않고 점점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구리와 가구도 포함되었다. 셋째, 상호 관세는 대미 흑자 규모에 따라 추가적으로 40%까지 부과되는 징벌적 관세이다. 특히 상호관세는 앞서 언급한 대로 경제학적 근거가 아닌 대상국에 대한 흑자 환수라는 정치적 판단에 기반해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논거와 국제통상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조치라 할 수 있다.

 

3. 관세, 투자 및 환율 정책의 결합
 

마이런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정책은 두 단계로 구성된다.4) 첫 번째 단계에서는 고율 관세를 통해 외국 자본의 미국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 관세가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해 미국 제조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관세 수입이 재정적자를 보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고이자율이 유지된다면 불가피하게 달러 강세가 유발한다. 관세정책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는 미국 제조업의 수출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결국 해결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제조업이 부흥하려면 달러 약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위적인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가 필요하다. 1980년대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소위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통해서 인위적인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관세-투자-환율 정책의 유기적 조합을 통하여 미국 국익중심의 마가 정책이 완성된다.

Ⅴ. 미국 대외정책의 사상적 배경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갑작스럽게 돌출한 예외적 정책처럼 보이지만, 미국 역사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큰 사상적 철학적 배경을 가진 세 가지 전통적 원리가 재조합된 결과라고 파악한다. 이를 신먼로주의, 맥킨리주의, 그리고 큰몽둥이정책(Big Stick Policy)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1. 신(新)먼로주의: 세계 경찰을 그만두지만, 미주 지역은 절대 사수
 

미국의 5대 대통령 먼로(1817~1825)가 1823년 발표한 먼로 선언(Monroe Doctrine)은 그 동안 미국 대외정책의 형성과 집행에서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으로 보고 여기서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며 외세, 즉 유럽제국의 간섭을 배격하겠다는 먼로주의는 미국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대외정책의 필요조건으로 기능했다. 먼로주의의 정신을 계승한 신먼로주의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전역의 분쟁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 이익이 위치한 지역, 특히 미주 대륙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국제질서가 다극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아메리카는 미국의 핵심 영향권임을 공식적으로 미국이 선언한 것과도 같다.
 

2. 매킨리주의: 고율 관세와 제조업 기반 보호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은 19세기 말 고율 관세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했던 매킨리 대통령(1896~1901) 시대의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고율 관세를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미국 국내 제조업의 보호, 더 나아가 제조업의 부활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동맹국에게도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맥킨리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외영토 확장주의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루스벨트주의의 대외정책: 강한 행정력과 영향권 구축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1909)은 군사력과 적극적 중재를 통해 국제질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런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트럼프는 관세, 투자협정, 달러체제를 결합하여 미국 중심의 새로운 영향권을 구축하고 있다. 이른바 큰 몽둥이 정책(Big Stick Policy) 전략의 현대판 버전으로 볼 수 있다.
 

Ⅵ.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와 전망


1. 최근의 변화


최근의 세계 경제는 상호의존성이 더 이상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오히려 상호의존성은 상대방이 의존을 미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공급망은 지역화되고 탈세계화 현상은 심화하는 가운데,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은 새로운 경쟁의 장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불안정성은 국지적 안보 불안이 전 세계적인 파급력을 지닌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이 관세를 무기화하면서 그간 지켜왔던 규범적 리더십이 훼손되고 있다.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으며 ‘미국 없는 세계’라는 담론이 부상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글로벌 남방뿐만 아니라 선진국들도 이젠 미국의 도덕적 우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며, 독자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다자주의 질서가 더 이상 글로벌 경제의 기본 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경주 APEC에서 미·중이 합의를 이루면서 양국 간 직접 충돌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이 안정은 양국이 서로의 영향력 영역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각자의 방식으로 영역을 유지하거나 확장하려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 유럽, 중동, 글로벌 남방 국가들은 더욱 복잡해진 선택을 강요받는다. 주변국에게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어려워진 대외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2. 전망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전략과 부채관리전략은 성공할까? 아마도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하는 형태로 현실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일단 제조업 부흥의 경우 미국에서 제조업 부흥의 우호적 환경, 예컨대 우수한 노동력, 사회인프라, 신규 노동력의 끊임없는 유입 등의 장점이 약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기업들은 제조업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가장 낙관적인 경우라면 미국의 제조업은 휴머노이드와 AI기반 디지털화로 성공할 수 있으나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는 큰 효과를 못 거두는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부채관리전략도 향후 큰 도전이 예상된다. 현재 연간 부채이자상환액이 국방비를 넘어선 상황에서 관리가능한 부채 관리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고 있으며 미 국채의 선호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화폐를 통한 미 국채에 대한 수요 확대의 미래도 아직 불투명하다.


이러한 회의적인 전망 앞에서 트럼프 정책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MAGA 연합의 국내 정치적 기반이 공고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이후에도 관세 중심의 대외전략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재정, 에너지, 산업 전략은 이미 관세정책과 강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정권 차원의 정책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대미의존도가 상당한 상황에서 향후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강화하고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미·중·러가 구축하는 새로운 영향권 구조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셋째,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국가적 생존전략과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
 

Ⅶ. 결론: 한국의 전략적 선택


세계경제질서는 이미 20세기적 구조에서 벗어나, 미국, 중국, 러시아가 상호 견제와 제한적 협력을 병행하는 불안정한 다극 및 분절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 관세정책은 이러한 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경주 APEC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이 일시적 안정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경쟁 관리 단계의 서막일 뿐이다. 오늘의 세계는 세 강대국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불편한 공존 속에서 영향권을 재정렬하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그 여파는 동맹국과 중견국의 전략적 공간을 더욱 좁히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중장기적 생존전략을 구축해야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미 중 러 삼중구조 . · · 속에서 과도한 편향은 위험을 초래하며, 공급망, 기술, 에너지, 안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압력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단순한 단기 대응을 넘어 다층적이고 구조적인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대응을 위해서는 국내 경제의 잠재 성장률 회복과 경제체질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경제환경 개선과 국토 공간 활용도 제고를 포함한 구조개혁을 통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국내적 토대가 뒷받침되어야만 외교, 안보, 통상 전략의 자율성과 선택의 폭이 유지될 수 있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협력의 다변화 전략이 절실하다. 유럽·일본·호주·캐나다 등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남방과는 균형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과 같은 세계 경제구조의 대전환 흐름에서 선도적 역할을 확보하려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장기적 경쟁력과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핵심적 수단이 될 것이다. 


한국은 새로운 다극질서 속에서 국내 역량 강화, 외교·경제 협력의 다변화, 그리고 신산업과 기술 전략의 주도권 확보라는 세 축을 기반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지켜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대외전략의 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질서 구조 변화의 일부이므로, 이러한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능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종합적인 중장기 전략을 마련할 중요한 시점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김흥종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이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고, 한국APEC학회 회장, 한국EU학회 회장, 아시아태평양 EU학회 회장,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역임했다. 외교통상부 및 산업통상자원부 자문위원,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위원장,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고려대학교 특임교수로 활동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대외경제 전반, 통상정책, 경제안보 등이다. 미국, 중국, EU 및 유럽, 인도, 러시아, 호주, 중동·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국제회의와 전략대화에 초청받아 국제적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Dynamics of the Korea-EU FTA: from the early stage to the entry-into-force” (The Routledge Handbook of Europe-Korea Relations 2022. 01), 『혁신경제 4.0』 (도서출판 한울, 2025.04, 공저), 『한국경제, 전환의 시간』 (도서출판 해남, 2025. 06,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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