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작성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된 표입니다.
자위대에 안방을 내줄 것인가, 고립을 자초할 것인가: ACSA라는 외통수(이상수, 초빙연구위원) [출처: 통일뉴스]
날짜
2026-06-09
조회수
400
2026년 5월 서울의 외교가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방한과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팽팽한 전략적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이에 앞서 열린 한·일 ‘2+2 안보정책협의회’가 양국 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예고한 상황에서, 현재 가장 까다로운 난제로 떠오른 것은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Acquisition and Cross-Servicing Agreement) 체결 문제이다. 미국의 ‘킬 웹(Kill Web)’ 구상으로 대변되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이라는 구조적 압박 속에서, 이제 ACSA는 단순한 이념적 공방의 대상을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한민국 안보 거버넌스가 마주한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적 선택지가 된 셈이다.

국내 외교안보 담론에서 대일 군사 협력은 언제나 폭발성이 강한 뇌관이다. 일본의 미진한 과거사 청산과 독도 영유권 도발, 그리고 2022년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반격 능력’을 공식화하고 방위비를 GDP 2% 수준으로 증액하는 등 자위대의 공세적 작전 능력을 팽창시키는 우경화 행보는 국민적 거부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교한 통제 장치가 결여된 전면적 군사 공조는 자칫 대만해협이나 동중국해 등 역외 분쟁 발생 시 한국이 일본 자위대의 후방 지원 기지로 동원되는 위험, 즉 전략적 연루(Entrapment)의 함정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안보의 현실주의적 계산서는 감정적 거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15개국 이상과 ACSA를 체결하여 해외 파병과 다국적 연합 작전의 작전 지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유독 일본과의 협정 부재만이 작전적 공백을 낳는 기형적 구조는 실천적 한계를 지닌다. 2013년 남수단 한빛 부대가 실전적 고립 상황에서 일본 자위대로부터 긴급히 소총탄을 지원받고도, 공식 제도적 기반의 부재로 인해 국내외적 정치 공방에 휘말렸던 사례는 평시 군수 공조 제도의 부재가 초래하는 안보 비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명분론에 매몰된 원천 거부는 도리어 한국을 안보 고립과 작전적 비효율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맹목적 수용’과 ‘자해적 거부’라는 이분법적 교착 상태를 탈피하여,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의 군사·산업적 레버리지를 활용한 ‘주권 제어형 단계적 수렴 모델’을 전략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는 안보적 실익을 취하되 주권적 결정권을 철저히 보장받는 정교한 제도적 비대칭 설계에 기반한다.

첫째, 협정의 법적·작전적 적용 범위를 기능주의적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기본 협정의 골자를 ‘비전투·해외 다국적 임무 한정형’으로 규정하고, 지리적 범위를 ‘한반도 역외’로, 작전 영역을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다국적 인도적 수색구조(SAR), 재난구호(HADR) 등으로 국한함으로써 미·일의 역외 분쟁 개입에 자동 연루될 가능성을 시원적으로 차단한다.

둘째, 세부 시행약정(Implementing Agreement) 수준에서 주권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다중적 통제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우선 군수지원 공여 품목에서 살상용 무기 및 탄약(Ammunition) 카테고리를 영구적으로 제외함으로써 상대국의 공세적 군사 행동에 우리가 연루될 여지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모든 형태의 군수지원은 양국 영토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완전무결한 상호 인정을 전제로 삼아야 하며, 특히 일본 자위대 자산의 한국 영역 내 진입 시 반드시 한국 정부의 명시적인 사전 서면 요청과 대한민국 헌법 제60조에 따른 국회의 비준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규정하는 ‘이중 주권 승인 제도(Dual-Consent Key)’를 명문화해야 한다. 나아가 협정 발효 후 3~5년 주기로 안보 환경 변화와 이행 실적을 정밀 평가하여 연장 여부를 재검토하는 자동 갱신 심사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군사 협력의 속도와 범위를 국민과 국회가 상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미·일 3자 협력의 거시 프레임워크를 수용하면서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연동해야 한다. 미국의 동맹 최적화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한·미 동맹을 확고한 중심축으로 설정하되, 일본과의 군수 협력은 철저히 선택적·조건부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한·일 군수협력 감독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용의 투명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국내 정치적 수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안보 공조는 역사적 당위나 일시적 감상으로 지속되지 않으며, 냉혹한 세력 균형과 치밀한 제도적 메커니즘 위에서만 작동한다. 일본이 한국과의 ACSA 체결에 외교적 역량을 투입하는 현상 자체가 역설적으로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군수산업 역량과 지정학적 가치를 방증하는 지표이다.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판을 거부하는 소극성이 아니라, 주도권을 쥐고 규칙을 설계하는 ‘조건부 단계적 협력’의 리더십이다. 역사적 정당성과 현실적 국익을 동시에 견인할 수 있는 이 정교한 모델을 바탕으로 외교·국방 당국은 국회 및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속에서 대일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