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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다자주의 시대, 제주포럼은 왜 다시 주목받는가(이상수, 초빙연구위원) [출처: 新경제신문]
날짜
2026-06-09
조회수
437
2026년 현재, 글로벌 질서는 다자주의의 단순한 균열을 넘어 ‘탈 다자주의(post-multilateralism)의 가속화’라는 통제 불능의 임계점에 직면해 있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이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패권을 차지하려는 전술적 차원을 완전히 넘어섰다. 이는 국제 규범과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전반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재편하려는 실존적·구조적 대결로 심화되었으며, 장기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적 마비를 유도하며 기존 집단안보 체제의 무력함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우리가 정밀하게 추적해야 할 지점은 갈등의 표면이 아니라 그 본질적 구조의 격변이다. 선명한 이분법적 전선과 진영 간의 정교한 문법이 작동했던 과거 냉전기와 달리, 현 대전환기의 위기는 국경의 통제력을 무력화하는 전방위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공급망 무기화, 데이터 주권, 인공지능의 통제권, 기후변화, 해양 안보 등 비전통적·복합적 위협이 동시다발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양상이다. 이 복합적인 메커니즘이 촉발한 파편화(fragmentation)는 더 이상 개별 국가가 선택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외교적 전략의 영역이 아니다. 도리어 행위자들의 기동성을 제약하고 국제사회 전체를 강제적으로 규율하는 새로운 구조적 구속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격변기 속에서 개최되는 제21회 제주평화포럼은 단순한 연례 외교 행사를 넘어 막중한 전략적 중량감을 지닌다.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이라는 의제는 표면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공식 외교 채널이 경색될수록 비공식·다자간 대화 플랫폼의 전략적 가치는 역설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냉전의 정점이었던 1975년의 '헬싱키 프로세스(Helsinki Process)'가 이를 방증한다. 상호 적대적 관계 속에서도 최소한의 신뢰 구축 조치(CBM)에 합의했던 이 제도적 장치는 향후 냉전 해체의 구조적 단초를 제공하였다. 다자 대화는 반드시 전면적 화해를 전제할 필요는 없다. 갈등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공론의 장을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외교적 효용성은 충분하다.

한국의 이른바 '샌드위치 딜레마' 역시 전략적 기회 요인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비대칭적 구조로 인해 한국이 선택을 강요받는 종속적 변수에 불과하다는 결정론적 시각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닌다. 오히려 이러한 경계적 위치(liminal position)가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중재 플랫폼 국가(Intermediary Platform State)'로 격상시킬 수 있다는 역 발상이 가능하다. 미·중 양국은 물론, 유럽연합(EU) 및 아세안(ASEAN)과 동시에 중층적인 공식·비공식 소통 채널을 가동할 수 있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나아가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 등 미래 핵심 전략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노드(key node)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독자적 입지를 강화한다.

제주포럼은 이와 같은 다각적 연결성(connectivity)을 가시적으로 실증하는 핵심적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 특히 제주가 지닌 평화의 상징성은 심리적·정치적 중립 지대로서의 레버리지를 제공한다. 공식 정상회담 체제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민감한 안보 현안들을 트랙2(Track 2, 민간 다자 대화) 방식으로 탐색할 수 있는 구조적 탄력성이야말로 제주포럼이 보유한 본질적 자산이다.

물론 그 동안 제주포럼에 제기된 비판적 담론 역시 명확하다. 실질적인 의제 설정(Agenda-setting) 권력을 행사하는 다보스포럼(WEF)이나 샹그릴라 대화(IISS Shangri-La Dialogue)와 달리, 제주포럼의 논의는 정책 네트워크로의 실질적 전이(transfer)가 미흡하여 말의 성찬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선언적 공동성명이 제도적 이행 구동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포럼은 외교적 일회성 행사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는 역설적으로 제주포럼만의 차별화된 잠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존의 강대국 중심 다자 메커니즘이 포섭하지 못하는 공백 영역, 즉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의 가교 구축, AI 거버넌스의 다자간 중립 토론장, 그리고 인도·태평양 해양 안보의 비공식 레짐 형성을 제주가 선점할 여지는 충분하다. 서구 중심적 포럼의 답습을 지양하고, 기성 플랫폼이 다루지 못하는 틈새 의제를 주도할 때 비로소 독자적인 지정학적 좌표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싱가포르의 샹그릴라 대화가 아시아 안보 담론의 지배적 준거점으로 자리매김한 경로와 궤를 같이한다.

현시점에서 가장 긴박한 당면 과제는 기술 안보 질서의 재편이다. AI 및 반도체 공급망을 통제하려는 미·중 간 패권 경쟁은 국제정치의 핵심 축을 형성하고 있으나, 이로 인한 파국적 충돌을 방지할 다자간 국제 규범은 아직 초안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유엔 차원의 AI 거버넌스 논의는 지지부진하며, 양자 간 협의는 상호 불신의 벽에 봉착해 있다. 만약 제주포럼이 AI 안보 및 윤리 규범 형성 과정에서 아시아적 시각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자임한다면, 이는 단순한 토론의 장을 넘어 실질적인 구조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이 보유한 핵심 기술 강국으로서의 위상은 이러한 외교적 이니셔티브에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기후변화와 해양 안보 의제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 지형이 고도화됨에 따라 남중국해, 대만해협, 북극항로의 안정성은 한국 경제의 생명선인 해상교통로(SLOC) 안보와 직결된다. 제주포럼이 해양 안보 및 탄소중립 협력의 다자적 허브로 기능할 때, 본 포럼은 비로소 지역적 한계를 탈피하여 인도·태평양 협력 아키텍처(architecture)의 핵심 축으로 도약할 수 있다.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는 더 이상 보충적 선택지가 아닌 필수적 생존 전략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중국의 쌍 순환(Dual Circulation) 전략,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은 선진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며 개발도상국의 소외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글로벌 사우스가 대안적 블록으로 결집하는 현상은 이미 가시화된 현실이다. 

제주포럼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중견국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의 허브'로 기능할 때, 한국은 새로운 국제 규범 형성 과정에서 구조적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제주포럼의 실질적 효용은 선언적 결의안의 구속력에 있지 않다. 오히려 대립 관계의 전략적 행위자들이 단일한 공간에서 조우한다는 ‘접촉의 사실성’ 그 자체에 본질이 있다—외교적 신뢰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전제 조건이 아니라, 이질적 이해관계의 지속적인 충돌과 조율 속에서 축적되는 사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보호주의 장벽을 높여가는 작금의 파편화 체제에서, 다자간 가교(multilateral bridge-building)는 쇼가 아닌 생존의 영역이다.

지금 대한민국 외교는 기로에 서 있다. 강대국이 강요하는 양자택일의 굴레에 갇혀 종속적 객체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선택의 구조를 만드는 전략적 설계자로 거듭날 것인가? 제주포럼은 이 전략적 전환을 실증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매년 되풀이되는 일회성 수사로는 외교적 관성이라는 두꺼운 벽을 결코 깨뜨릴 수 없다.

제주포럼이 국가 급 회의로 격상된 현재, 담론의 과잉을 걷어내고, 제주에서 발굴된 다자 의제를 외교부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NSC)의 핵심 중장기 전략과 직결시키는 상설 '글로벌 외교의제 연계 전략조직(Task Force)'을 제도화해야 한다. 나아가 포럼의 결과물이 단순한 권고에 그치지 않도록 아세안(ASEAN) 및 믹타(MIKTA) 등 중견국 협의체와의 연례 실무 후속 회의를 패키지화하여, 글로벌 거버넌스의 실질적 규범 메커니즘으로 안착시키는 구체적 이행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제주의 평화적 이미지와 공간적 유연성을 서울의 정교한 정책 집행력으로 실행할 때, 한국은 비로소 강대국의 강요된 선택의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다.

출처 : 신경제신문(http://www.thenew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