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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과 EU의 선택: 다자주의의 보루인가 일방주의로의 편승인가 By : 김시홍 (한국외대 장모네 EU센터 소장) JPI PeaceNet: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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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과 EU의 선택: 다자주의의 보루인가 일방주의로의 편승인가

김시홍
한국외대 장모네 EU센터 소장

I. 서론


2019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전통적인 중도우파와 좌파 세력의 득표율이 감소되고 포퓰리즘 세력들이 신장되면서 우려가 제기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집행위원회 및 지도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EU)은 또한 영국의 공식적인 탈퇴로 인해 불확실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통합의 구심력과 원심력 사이에서 앞으로의 전개가 주목받고 있다.


EU는 2016년 글로벌 전략(EUGS)을 마련하면서 대내외적인 위기를 인지하고 원칙화된 실용주의(Principled Pragmatism)를 표방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의 제고를 도모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중국의 강성대국 전략으로 인한 미중 갈등에서 적지 않은 혼돈과 전략의 부재를 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유럽의 상황인식과 그 대책을 살펴보는 작업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미국의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중국의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로 인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당연시해온 국가들이 상당한 혼돈을 경험하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미중 갈등의 양상을 간략히 살피고, 이어서 EU와 그 회원국들이 전개하는 외교정책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결론에서는 미래전망을 살피고자 한다.



2. 미중 갈등의 양상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tug-of-war)은 경제와 무역, 외교와 안보 그리고 지정학적 양상을 포괄하는 대전략(grand strategy) 간의 경쟁으로 파악된다.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의 입장은 그간 세계 안보의 파수꾼 역할을 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경제 주체들의 불만이 제고되어왔다는 인식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은 미국이 무역적자를 구조적으로 경험하는 나라들이므로 이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적 정책(America First)으로 부상한 바 있다. 한편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였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고 판단되어 무역 및 관세전쟁의 양상으로 치달은바 있다. 결과적으로 1차적인 봉합(US-China Phase One Deal)이 이루어졌으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미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지난 수십년간 상호공조적인 경제관계를 맺어온 미국과 중국이 단시일내에 완전한 분리(decoupling)를 시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이상과 같은 일방주의(unilateralism)적 태도는 이차대전 이후 70여년을 지탱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반하며, 사실 이 질서를 만든 국가가 미국이므로, 관련 국가들에게 당혹스런 현실로 다가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던 바로 그날 밤 백악관의 기후변화 홈페이지를 삭제한 행태는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재앙으로 비춰졌으며, 그 이후의 양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기후변화를 하나의 과학적 사기라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파리협정 탈퇴에 이어 UN에 대한 회의, WTO 무역질서에 대한 부정 그리고 유럽이 다자주의적 노력의 화신으로 간주해온 이란 핵협상(JCPOA)에서 탈퇴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보이고 있어, 유럽국들과 EU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사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지원해온 EU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3. EU의 선택: 전략적 자율성의 제고


2019년 말 뒤늦게 출범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폰데어 라이엔 위원장은 자신의 집행부가 지정학적(geopolitical Commission)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지정학적 집행위의 개념은 아직 구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유럽이 현재 처한 현실에서 규범권력으로서의 역할에만 국한해서는 여러 파고를 헤쳐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과연 EU가 미중 갈등의 상황에서 그간의 기조인 다자주의 원칙과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유럽도 규범보다는 근육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통합연구에서 흥미로운 가설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폰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첫 공식 해외 방문으로 아프리카를 선택하였는데, EU와 아프리카 관계의 재설정을 제시하면서 종합적인 정책조합을 주문하였다. 융커 집행위에서 불거진 이민문제에 관련하여 단기 중심의 대책이 마련되어 근원적 해결방안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의식한 듯, 아프리카 대륙이 유럽의 이웃으로서 장기적 시각의 정책들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는데, 앞으로 지정학적 집행위를 표방한 현 지도부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리트머스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세르비아를 방문한 집행위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질문들을 받았는데, 자신이 천명한 정책 기조 대비 미흡하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중요 이슈는 회원국들의 소관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대 대비 능력의 측면에서 여전히 갭(capabilities-expectation gap)이 크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제 보다 본격적으로 미중 갈등 사이에서 EU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지난 수년간 EU의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는 등거리(equidistance) 외교였다. 즉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한편을 들기 곤란하므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되 사안별로 연대하는 방안이 견지되어왔다. 등거리 외교는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 필요한데 유럽의 경우 적어도 경제분야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이를 통해 유럽이 자랑하는 다자주의적 전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도 포함되었다. EU와 그 회원국들의 등거리 외교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전망에서는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지속적으로 유럽에게 지지를 호소하거나, 유럽을 이이제이(divide and rule) 방식으로 요리하려는 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건은 EU와 그 회원국들이 단합하여 하나의 대오를 갖춘다면 등거리 외교의 효과성이 유지될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강대국 정치의 수동적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중 경쟁관계 시대에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째, 다자주의의 지속이다. 둘째는 양서대양 관계를 강화하고 그에 의존하는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보다 중국에 친화적으로 다가가는 노선이다. 다자주의의 지속은 트럼프 하에서는 상당한 문제를 내포한다. 일방주의와 무역 및 관세전쟁의 상황에서 다자적 해결책은 점차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WTO의 상소기구(Appellate Body)에 미국측 신규위원의 선임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무력화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으로 기우는 정책의 경우 안보에서는 유리하지만 무역 측면에서 실익이 없으며, 중국과 대립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중국에 친화적인 정책의 선회는 당장에는 용이치 않고, 과거 중국의 행태로 보아 의구심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태도 여부에 따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안보와 국방에 국한시켜 이 문제를 살펴보면, 세 가지 측면이 고려될 수 있다. 의무전략(strategy as responsibility), 헤징 자율성(autonomy as hedging) 그리고 참여적 자율성(autonomy as emancipation) 등이다. 의무전략은 미국의 국방비 증대에 대한 압력에 대해 책임있게 대응하는 것으로 점차 국방예산을 늘리는 방식이다. 헤징자율성은 미국의 대유럽 군사적 보호가 느슨해지거나 약화된다는 전제하에 국방산업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방식이다. 참여적 자율성은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전략으로 유럽이 단일대오를 갖추고 군사적 역량을 일정 정도 갖추었을 때를 전제로 한다. 이상의 세 길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되고, 상설안보협력체제(PESCO)나 유럽방위기금(EDF)이 강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프랑스의 마크롱이 주창하는 유럽군대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럽의 안보전문가들이 내다보는 것은 안보에 있어 미국과의 연대 지속 그리고 경제에서 중국과의 비즈니스 기회의 증대로 요약된다. 즉 양면(ambivalence)전략이다. 관건은 방법론일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의도를 미국과 중국이 모를리 없으며, 오히려 회원국간의 이해타산을 활용하여 통제하려 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EU집행위는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통해 이제 중국이 더 이상 경제파트너이자 경쟁자의 차원을 벗어나 체제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systemic rival)로 묘사한 바 있다. 이는 동년 1월 독일에 의해 제기된 개념으로 중국이 무차별적으로 유럽의 기업들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핵심적 안보역량이 노출되고 결과적으로 위협이 된다는 인식에서였다. 실제로 중국은 동년 3월 이탈리아와의 정상회담에서 BRI의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트리에스테와 제노바 항구시설의 개선에 대한 중국자본의 유입을 가능케함으로써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하였다. 즉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은 군소국가가 아닌 G7의 일원인 이탈리아가 이러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한 베를린, 브뤼셀 및 워싱턴의 심대한 우려가 표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동년 3월 EU-중국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반전되었는데, 중국이 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글로벌 이슈에서 유럽의 입장을 지지하며,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보호무역을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미국과의 전선이 형성된 상태에서 유럽마저 등을 지게되면 곤란하게될 상황을 염두에 둔 처사였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이 각각 유럽을 대상으로 펴는 외교전에서 유럽의 대오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적지 않은 이해관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회원국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략분석가들의 중론이다. 즉 안보에서 미국 그리고 경제에서 중국이라는 공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물론 회원국들간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다. 독일은 중국에 치우치는 전략을 세울 생각이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No pivot to China).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로 묘사한 첫 국가가 독일이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보다 미국친화적 태도를 견지한다. 다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회원국간의 의견차이를 최소화하여 단일의 입장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경우,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더욱 자율성이 제고된 유럽을 지향한다(Bolstering multilateralism and a more autonomous Europe).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 모두 핵심 파트너이므로, 미국의 일방주의와 중국의 굴기에 대해 민감한 전략적 선택을 기피하면서, 규칙에 기초한 다자질서를 지향하고 소생하기를 바라며, 점증하는 불확실성 하에서 더 강한 유럽의 응집과 자율성의 강화를 추구한다. 영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본으로 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경제면에서도 미국에 더욱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Huawei와 같이 사안별로 차별적(issue dependent)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어 종합적 판단이 용이치 않다.


이탈리아는 냉전시기에도 워싱턴과 모스코바의 교량 역할을 자임한 바 있으며, 미중 갈등에서도 유사한 교량역을 희망하고 있다. 안보면에서 나토와 양서대양관계를 기본으로 하지만 중국자본의 유입과 Made in Italy의 중국 시장에의 진입을 희망하고 있다. 스페인은 미국을 동맹으로 간주하지만,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강력한 옹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중국이 도전적이지만 매력적인 경제파트너이고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서도 핵심적 당사자로 인식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유럽통합과 전략적 자율성의 제고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교고위안보대표가 스페인 출신 조셉 보렐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회원국들의 그룹별 차원에서는, 포르투갈,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서 미중간의 교량역할을 희망하고 있으며, 헝가리는 미중의 갈등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고, 라트비아, 루마니아 및 슬로바키아는 낮은 자세로 기다려보자는 입장(wait-and-see)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 독일, 스페인 및 EU는 전략적 자율성을 제고하고 경제주권을 강화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도 전략적 자율성에 동조하고 있다.



4. 전망


이상의 분석에서 유럽의 선택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등거리 외교를 희망하지만 주어진 현실은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중국의 굴기전략은 유럽에게 분명 재앙으로 다가왔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노선은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규모면에서 유럽은 대국이므로 공동의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통합의 방향과 회원국간의 조정 및 공동의 대외정책을 수립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가에 있다. 결국 EU 지도부와 회원국 정상들의 리더십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방위기금의 활성화 및 유럽연합 다년예산안의 확정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이 지향하는 다자주의의 전망은 어떠한가? 미중의 일방주의 내지 힘의 외교에서 유럽은 일차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제3국들과의 연대가 긴요할 것이다. 전략적 동반자이기도 한 캐나다, 호주, 일본 및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들간의 연대만으로 양강의 파고를 넘지는 용이치 않으리라 본다. 결국 전략적 자율성의 문제는 EU와 그 회원국들이 풀어나가야할 숙제로 다가온다. 지지부진할 경우 유럽의 운명은 양강에 의해 좌우되는 부정적 미래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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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저자 現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유럽연합학과 교수이자 장모네 EU센터 소장.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2005.7~ 2007.7), 한국유럽학회 회장(2009),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2015.11~ 2017.11)을 역임하였다. 2013년 이탈리아 공화국대통령으로부터 기사작위훈장(Cavaliere)을 수여하였으며, 2016년 유럽연합으로부터 장모네 석좌교수에 선정되었다. 주요 저서로 『한-EU 관계론』 (HUINE, 2019), 『Promoting Security Cooperation and Trust Building in Northeast Asia. The Role of the EU』 (Nuova Cultura, 2017), 『Asian Countries' Strategies towards the EU in an Inter-regionalist Context』 (NTU Press, 2015), 『The Future of European Studies in Asia』 (ASEF,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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